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환산정 옛이름은 '대나무 별장'입니다:화순우리신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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환산정 옛이름은 '대나무 별장'입니다

백천 류함 선생의 고고한 선비정신이 서려있는 환산정
<기고>문화류씨 검한성공파 화순종중 류정훈 사무국장

화순우리신문 | 입력 : 2024/03/23 [03:44]


병자호란 때 맹주(盟主)였던 백천 류함 선 생이 5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청주까지 올라갔다가, 화의소식을 듣고 내려와 서암 산중 환산동(環山洞)에 한 칸의 초정(草亭:대나무)을 짓고 은거했다.

이는 백천유집(百泉遺集) 기(記) “대나무 별장”에 상세히 기록이 남아 있다.

17세기 중반 백천 류함 선생의 5대 종손인 도곡(道谷) 류정운(柳鼎運) 주1) 선생이 환산동(環山洞) 초정(草亭) 주변에 기걸할 때 원교(圓嶠) 이광사(李匡師) 선생은 도곡 류정운 선생 집에 하룻밤을 머물면서 백천 류함 선생의 생애, 학문, 의병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, 감복하여 우국충절(憂國忠節)의 초정(草亭)에 올라가서 갈필(渴筆)로 "환산정(環山亭)"이란 편액(扁額)의 작품 을 남기게 되었다.

그 후 초정(草亭)이 무너지고 풀만 무성한 자리를 보곤 후손들이 가슴 아파 하며 힘을 모아 1896년 정자를 중건하고, 원교(圓嶠) 이광사(李匡師) 주2) 선생의 갈필(渴筆) 주3)작품의 편액(扁額)을 걸어 그 후로 환산정 (環山亭) 주4) 이라 부르게 되었다.

주1) 도곡(道谷) 류정운(柳鼎運, 1702~1775): 화순향교 도유사(전교) 역임
주2) 원교(圓嶠) 이광사(李匡師, 1705~1777): 조선 4대 명필
주3) 갈필(渴筆): 대나무를 이로 잘근잘근 씹어 붓처럼 만든 후 먹물을 묻혀 글씨를 쓰는 방식.
주4) 환산정(環山亭):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35호,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 백천로 236-1

*대나무 별장(竹窩)*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백천 류함
대를 현(賢)이라 함은 어진 이를 닮아서겠지 
竹以稱賢蓋似賢
고인 집 마당 가득함은 그러함을 취해서라 
古人庭實取其然
성근 뿌리 침상 마루 틈으로 들어오는데 
踈根穿入床軒隙
빽빽한 잎 맑음은 안독 앞에 생겨나네 
密葉淸生案牘前
바둑 국면 한창일 때 소리 절로 응하고 
碁局圍時聲自應
술잔 기울인 곳에 그림자 서로 이어지네 
酒盃傾處影相連
물욕 없는 물건으로 새 별장 지은 것은 
新窩構得亭亭物
된서리에 절개 홀로 오롯함을 사랑함이라 
爲愛嚴霜節獨全

*대나무 별장기(竹窩記)*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백천 류함

내가 대나무를 사랑하는 버릇이 있어 아이들로 하여금 샘가에 한 칸의 집을 지으라 하고, 집의 재료는 모두 대나무로 하되 소나무나 다른 재목은 쓰지 못하게 하였다. 들보도 대나무로 하고, 


서까래도 대나무로 하고, 기와도 대 나무로 하고, 마당 경계에 또 대나무 여러 줄기를 심어서 맑은 바람을 맞이 하였다. 별장의 이름을 ‘대[竹]’가 아니라 왜 ‘별장[窩]’이라 했는가 하면, 내가 대나무 관을 쓰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대나무 별장 가운데를 소요하다 가 대나무 침상에 누워 쉬고, 


손에 대나무로 엮은 주역 한 권을 쥐고 소일 하면서 세상 염려를 보낸다면, 사람들이 천상죽와노수(泉上竹窩老叟)라 부르 겠지 해서 그런 것이다.

#천상죽와노수(泉上竹窩老叟): 샘 가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대나무 별장의 늙은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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